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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서는 충청북도 청주(淸州) 출신이다.1907년 4월초에 고향 청주에서 한봉수(韓鳳洙)와 함께 의병을 소모하여 거의하였다.4월중에 의병 9명과 함께 무기를 휴대하고 각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5월 10일(음력) 괴산군 서면 사치(沙峙)에서 의병장 한봉수가 쌍안경으로 일본 수비대 2명이 우편물을 호위하며 통과하는 것을 확인하고 저격케 하였다.정춘서는 동료 9명과 함께 일제 사격을 가하여 일본 병졸 2명을 사살하고, 군용총 2정, 총검 2자루, 탄약함 2개, 수통 1개, 탄약 10발을 확보하였다.이때 이들 의진의 활약과 거점 등에 대하여 청주군 북강 내이면 화죽리에 거주하는 박내천(朴來舛)이라는 자가 왜경에게 제보, 의병 토벌에 협조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그리하여 8월 15일 그 밀정을 서면 사치에서 사살하였다.10월 동리(東里)에서 김덕보(金德甫)·이주사(李主事)로부터 군자금 50원을 모금하였다.11월 8일 한봉수와 결별하고 12월에 동료 이종칠(李鍾七)외 1명과 총 2정으로 무장하고 16일에 청주군 북강 외이면 양청리(陽淸里) 유주사(柳主事)집에서 44원 10전을 군자금으로 모금하였으며 계속해서 목천 일대에서 활약하였다.그후 이러한 행적이 드러나 적에게 체포되었으며 청주지부에서 소위 내란·살인·강도죄로 교수형이 선고되어 상고하였으나 1911년 6월, 형이 그대로 확정되어 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