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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와 이기진선생께서는 1869년 이 마을 하곡에서 전주이씨 효령대군 18세손으로 탄생하시고 정의에 강한분으로 유명하셨다. 1895년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이 치욕적 분노를 일으키고 국가의 존망을 근심케 되었다. 선생께서는 왜군을 물리치고 국권을 회복코저 노심초사하시다가 의암 유인석과 성재 유중교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제천에서 의병 봉기를 계획함에 의진에 참여하시고 1895년 12월 15일에 호좌의병진을 조직하고 의암을 대장으로 부대를 편성 선생께서는 지략과 용맹이 뛰어났다 하여 홍선표 정화용등과 종사로 임명되어 많은 활약을 하시다가 충주 전투에서 크게 전과를 올리고도 패해 의암의 명을 받고 서해지방 인사들을 방문 3개월간 1400여리나 구재를 위해 북상중 랑천에서 소토장 경암 서상렬이 왜군과 전투에서 장렬이 전사하여 300여리 떨어진 제천에 송현구와 같이 안장하셨다. 다시 서해 북상중 평양부근에서 득병하여 의진에 참여치 못하시고 귀향하시어 국권침탈을 개탄하시면서 위정척사의 후학양성에 진력하시다가 의병활동으로 지쳐 얻은 병으로 국권회복의 한을 품고 40세에 생을 마치셨다. 고인의 공을 기리어 1990년 국가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선생께서 가정을 뒤로 하시고 왜군을 물리치고 국권을 회복코져 심진을 다 바친 애국정신을 후세에 영원토록 잊지않고 산교육이 되게 하기 위하여 이 추모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