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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낙윤(鄭樂倫) 1885~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 조국의 광복을 쟁취할 목적으로 1919년 6월 서울에서 청년외교단을 조직하였는데 그는 특별단원으로 가입하여 활약하였다. 그러나 동년 11월 애국부인회가 일경에 탐지됨과 동시에 청년 외교단도 노출되어 이병철, 안재홍, 김홍식, 김연우 등의 단원들이 체포되었다. 다행이 상해로 피신하였으나, 1920년 6월 29일 상해에서 그는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해사부 참사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는데 임시의정원 의원인 조덕진, 강진우 등과 독립운동 자금의 조달이 시급하다는데 의견이 합지 되었다. 1921년 2월 군자금 모집의 사명을 띄고 다시 입국하여 활동하던 중 1921년 7월 서울 사직동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활동하였다고 하며 1927년 2월 6일에는 만주 봉황성에서 교민들이 봉성 농우회를 조직하자 박광, 강한조, 조익수, 김정한 등과 위원에 선출되어 활약하였다. 정부에서는 1963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음 정태영(鄭泰榮) 1888.10.13~1959.05.07 / 국내항일 / 건국훈장 애족장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가 독립을 선언할 당시 그는 종로 보신각의 종을 울려 한국민의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렸다. 그후 1919년 외교론의 방략 아래 외교활동을 독립운동의 행동지침으로 표방하고 청년이 주체가 되어 결성한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입, 활동하였다. 동단은 서울에 중앙부를 설치하고 국내의 회령.충주.대전 등지에 지부를 두는 한편 해외에 상해 지부를 조직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밀접한 관련 속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동단은 주로 외교활동에 치중하여 외교원의 해외파견 및 기관지 [외교시보]를 발간하였고, 아울러 자매단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조직과 함께 중부 이남지역에서 연통부와 대한적십자회 대한총지부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런데 1919년 11월말 동단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그도 일경에 피체되어 1920년 6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포함)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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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영(金熙暎) 1892.01.08~1975.01.01 / 국내항일 / 건국포장 1924년 9월 전북 익산에서 이봉길, 장일환과 함께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갑자연구회에 가입하여 월례회를 개최하고 강연활동을 하였다. 이후 단체명을 갑자연구회에서 민중운동동맹으로 개칭하고 같은 해 11월 2일 정기회에서 기관지 '민중운동' 발간을 결의하였다. 김희영은 편집을 맡아 1925년 1월 7일 서울 공평동 대동인쇄회사에서 잡지를 인쇄 출판하여 회원 다수에게 우송하기로 계획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김희영은 1925년 12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대정8년 제령 제7호 위반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