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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동(朴喆東) 1915~1941.12.12 / 중국 방면 / 건국훈장 애국장 충주에서 학생운동에 참가한 후 일경의 요시찰 인물로 주목되어 1931년 2월 중국 심양으로 탈출하였다. 1933년 남경 출발하였다. 일경에게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탈출한 후 1934년 1월초에 낙양군관학교 제2기생으로 들어갔다. 그 뒤 1년 반 후 동교를 졸업한 그는 1935년 7월에 조선민족혁명당에 가입하였다. 그 해 혁명당의 명령에 따라 화남으로 파견되어 가던 도중 복건 천주 나루터에서 일군에게 피체되었다. 그는 곧 일본 큐슈로 압송되어 징역 3년을 받고 큐슈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8년 가을 출옥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머무르다가 일경의 눈을 피하여 중국의 운성으로 탈출하였다. 운성에 도착한 후 애국청년들을 모아 반일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9년 낙양의 조선의용대에 가입하였다. 1941년 12월 12일 하북성 원씨현 호가장 부근에 주둔하고 있던 중 일본군의 불의의 습격을 받아 이에 맞서 싸우다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9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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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응(元鍾應) 1909.04.14~1991.03.24 / 국내항일 / 건국포장 1932년 5월 충남 대전에서 충남전위동맹과 비밀결사 적색소년동맹을 조직하고 그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용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학당에서 2년간 재학하다가 중도 퇴학하였다. 1932년 1월경부터 4,5개월간 잡지 지사를 경영하고, 그해 5월 1일 충남 대전군 외남면 고산사의 뒷산에서 정창세.유의영.강창기.이병주 등과 함께 충남전위동맹을 조직하였다. 여기에서 원종응은 교양부를 담당하였다. 한편 대전전위동맹 외에도 비밀결사 단체인 적색소년동맹을 조직하고, 그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1935년 7월경에 대전중학교 학생반 및 무수리 농민독서회에서 사회과학 서적을 윤독하는 등의 활동을 지도하였다. 1932년 11월경 원종응은 대전군 시제사공장에서 동맹파업을 전개하자 이를 격려하는 내용의 격문을 인쇄, 배부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본 경찰에게 피체되어 1934년 11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8월을 받았다. 정부는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