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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만당 홍공묘표 공의 휘는 승로며 호는 만당인바 풍산인으로 시조 휘 지경은 려곅ㄱ학직학으로 4대에 걸쳐 대대급제로 대제학에 이르렀으며 선조임란시 대사헌을 거쳐 영의정에 오르신 문경공 호묘당 휘 이양의 후예이다. 10대조는 남원부사를 거처 좌찬성이시고 9대조는 풍산현감을 거처 호조참판이시고 8대조는 좌부승지를 거처 이조판서로 관면이 연면되여 명성이 율혜하던 중공의 선고는 조선조말 고종시어로서 충직을 다하여 생을 보내셨고 공은 서기 1894년 6월 14일 중원군 소태면 덕은리제에서 출생하였다. 유시부터 명민비범하시고 의분심이 강하시며 대의명분이 뚜렸하시여 위국독립으로 불고부모처자하시고 이역만리에서 자신의 재질을 양성하기위해 동경중앙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신바 재학시 공이 조직한 노동동우회릐 회원 서상한사건 관련으로 피검 미의원단 동양시찰차 동경도착시 일제의 부당한 한국강점을 규탄타가 피검 매국노 민원식 살해사건의 배후 주동으로 피검 기준보주길림으로 망명하셨다가 독립운동 자금조달목적으로 함남안변에서 광산을 경영타가 일경에 피검 중국밀행 귀국사건과 흥업구락부사건으로 입감 해방후 반민특위 감찰위원으로 활약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역임 공의 이와같은 열혜한 지사는 해방전후가 시종여일하시다가 그 공로로 서기 1963년 국가로부터 포상을 받으셨다. 공은 서기 1964년 12월 19일 향리에서 별세하시였고 초배 청주한씨는 무육으로 서?에 잠드시고 계배 원주원씨는 1남을 두시고 걸위와 합부되시였다. 공의 자중으로 공적의 전모가 밝혀지지않다가 공몰 후에 이관영 최승만 박순천 전진한 김위분 김준연 제씨에 의해서 위와같은 사실이 증명되였든바 공의 사자 좌근군이 영심국가의 사전으로 묘도 의물을 건립코저 불녕에게 요청함으로 평일 앙모하든 세의로 문졸을 불고하고 우와같이 지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