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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柳瑾, 1861~1921)은 용인에서 출생하였고, 호는 석농이다.『 황성신문』창간에 참여하였고, 복간 시에는 사장을 역임하였다. 1907년 4월 신민회가 창립하자 이에 가입하여 애국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고, 1907년 8월 통감부에 의해 대한자강회가 해산당하자 11월 이를 계승한 대한협회를 발기하였다. 1909년에는 대종교에 가입하여 간부로 활동하였다. 국권 피탈 후에도 유근은 경제·문화 분야에 관심을 갖고 독립의식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911년 조선광문회에 들어가『동국통감』등의 명저를 수집, 보급하는 데 힘썼으며, 1915년에는‘조선식산장려회’를 조직하여 민족자본을 모으고자 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날 당시에는 국민대회 13도 대표로 참석하여 이른바 한성정부라고 불리는 임시정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20년 이상재와‘조선교육회’를 조직하였고,『 동아일보』편집고문으로서 창간호 1면에「아보(我報)의 본분과 책임」이라는 논설을 통해『동아일보』가 민족지로서의 책임을 굳세게 이행할 것을 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