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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응(李漢應, 1874. 9. 21~1905. 5. 12)은 이동면 화산리에서 태어났다. 28세인 1901년 3월에 주한 영국·벨기에 양국공사관의 참사관으로 부임하였고, 이듬해에 공사 민영돈(閔永敦)이 귀국함에 따라 특명서리공사가 되었다. 일제가 1905년 5월 초 영국 주재 한국공사관을 철수시키려 하자 이한응은 국권이 박탈됨을 통분하여 이를 항의하고, 런던의 각국 공사들에게 한·일 관계와 한국이 아직 독립국가임을 설득하고자 했으나 주영 한국공사관의 활동은 이미 외교권이 없다는 이유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는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1905년 5월 12일 런던에서 자결하였다. 국내로 돌아온 이한응의 유해는 그 해 7월에 현 위치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