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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선전관으로 재직중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국권을 상실하자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관직을 사퇴하심.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동양평화 독립유지 황실존중 청년교육을 목적으로 동우회를 결성하심. 서울의 중앙 소공동에 본부를 두고 5개 지역에 지부를 둔 항일조직으로 인사 총무 담당 간부로 활동하심. 고종황제가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이준 등 대표단을 일제 몰래 파견하자 고종을 폐위하고 일본으로 소환하여 일왕에게 사죄하도록함. 동우회는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1907년 7월 17일 석고단에서 특별회의를 개최하고 고종황제의 폐위 및 일본 신행 반대 을사오적 등 친일 정부대신 주살들을 위해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에서 대규모 군중시위를 열고 만인소를 설치하기로 결의함. 시위는 2만여명이 일경과 대치하며 주야 7일간 격렬하게 이어 갔으며 고종의 신행은 저지했으나 강제 퇴위되셨고 이 소식이 전해지자 시위는 더욱 격렬해짐. 그날밤 결사대를 조직 총리대신 이완용의 가택을 방화 전소시켜 버림. 동우회 간부들은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과 재판을 받았고 인사 총무직을 담당하신 지사님은 내란죄로 전라도 지도로 10년의 유배형을 받으심. 1910년 한일합방후 유배에서 풀려나 금어리로 낙향 신병치료와 후진양성을 하심. 특히 종욱 종엽 두 아드님의 항일독립운동에 많은 지원을 하셨으며 이로 인하여 일제 강점기 내내 고초를 받으시다 1939년 9월 13일 광복을 보시지 못하고 67세를 일기로 타계하심. 2019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으심. 2020.11.17 비를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