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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면영 자는 춘향 호는 혜정 고는 홍문관학사 휘는 흥직 자는 순교. 비는 숙부인 양천허씨 가선대부 찬의 여식이다. 공은 서기 1873년 12월 1일 세거 광주 출생. 을미년 이천에서 의병활동. 경자년 중추원의관 광무 6,7,8년 초대 오포면장 역임. 신해년(왜정 2년) 중국으로 망명. 정사년 귀국. 재경 기미년 3월 28일 오포면사무소에 운집한 백여명의 군중을 회동 독립만세를 고창한 후 광주군청으로 인도 도중 일종령 헌병들에 발포 위협에도 불굴 일심동체로 밀고 나아가면 발포도 체포도 못할 것이다라고 외치시며 과감히 군중을 선도하여 군청으로 가서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시다가 체포되시여 1년 6개월의 형을 복역하시고 출옥 후에도 재경 독립운동 지속. 1931년 8월 13일 서거. 향리 선산에 안장하다 친우들에 주선으로 2백여명의 친우와 동지가 묘전에 모여 백일제 거행. 위만장성림폐광(만장이 숲을 이루어 빛을 가리다)하고 애통소리 산천초목도 숙연하였다하니 공의 생존 시에 동지애와 덕망은 불문가지라 연이 공의 행적 인멸로 재이천 3년, 중국 망명 6년 재경 10여 년간의 업적을 추적 불능하여 통한지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