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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김석진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1860년 정시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고 그 후 종친부(宗親府)의 관직을 거쳐 사과(司果) 전적(典籍)을 역임하고 지평(持平) 장령(掌令) 사성(司成) 사간(司諫) 등 청요직(淸要職)에 있었다. 그 후 계속 승진하여 한성부 좌 우윤, 호조 이조 형조 공조의 참판, 형조판서,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 통어사(統禦使) 등을 지내었다. 1896년에 특진관(特進官)에 이어 비서원경(秘書院卿) 장례원경(掌禮院卿) 귀족원경(貴族院卿) 등을 역임하고 1901년에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가 되었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고종과 대신들을 위협하여 소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침탈하자 즉각 이에 대한 반대투쟁을 전개하여 일제침략을 규탄하고 「을사조약」의 파기와 을사5적의 처형을 요구하는 강경한 상소를 올리었다. 1910년 8월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여 나라가 망하자 일제가 주는 작위(爵位)를 거절했을 뿐 아니라 일제의 병탄에 항의하여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충절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