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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경장이 되며 나라는 차츰 새로워지는 듯 하였으나 실상은 내리막길로 달리게 되었다. 이때 증조고 오천 선생은 글러지는 세상을 개탄하여 양근으로 내려가사시어 이듬해 첫손자로 선군을 보시고 애지중지 하셨다. 거기서 선군은 자라서 장가드시고 정미년 가을에 온집이 오현으로 옮아오시다. 몇 해 있다 경술합방이 되어 증조고께서 순절하시니 조고 동강 선생은 습작을 목숨 걸어 물리치시매 우리 집의 앞길은 항일 밖에 없었다. 이에 선군은 부조의 뜻을 그대로 받들어 오직 한학에 전념하시었다. 일생을 하루도 책을 손에 놓지 않으시니 경사에 두루 밝아 근래 따를 이 드물었고 끝내 머리를 보존하여 의관을 고치지 않으시매 글을 청하려는 사람 잇다라 문에 이르렀다. 비록 살림은 어려웠고 사물에 등한하셨으나 옛 범절은 조금도 어김없이 지키셨으며 선대문집도 아직 내지 못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