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page


199page

온순한 천품 명석한 식견이 아니었던들 어찌 능히 감당하였으리오. 광복 후에는 내일이 나라 일이요, 나라 일이 바로 내 일이라 하여 우선 사서연역회의 한 사람으로 역사 번역에 힘을 기우렸고 만년에 이르러 학교를 세웠으니 곧 창문여자중고등학교다. 그 경륜을 세우고 일하던 중 홀연한 풍환으로 여러해 병석에 누웠다가 마침내 그 빌미로 양친을 모신 채 한마디 말씀도 끼치지 못하고 세상을 여의시니 아아 슬프다. 그러나 여러 아이 있어 가풍을 이을지니 고히 잠드소서 우리 오형제에 내가 바로 공의 버금이라 행적을 가장 잘 알아 조카들이 내게 글을 적으라 하기 삼가 대강을 돌에 올려 길이 전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