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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국권 수호를 위한 의병 봉기가 을미년(1895) 을사년(1905). 정미년(1907) 세 차례 전개될 때 원주지역 의병은 주도적인 활약을 하였다. 을미의병과 을사의 병에서 이춘영(李春永)·김사정(金思鼎)·윤기영(尹基永)·원용팔(元容八) 등이 분연히 일어섰고, 이러한 의병활동은 정미년(1907) 군대해산 이후 최후의 국권수호운동인 정미의병 봉기로 이어졌다. 정미년(1907) 일제에 의한 고종의 강제 퇴위,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의 강압적 체결, 군대해산 등을 계기로 원주에서는 8월 5일 오후 2시 원주진위대의 김덕제(金德濟), 민긍호(閔肯鎬), 윤기영(尹基永) 의병장 등의 지휘 아래 구국의 횃불을 높이 들었다. 원주정미의병은 이후 결성된 13도(道) 창의군(倡義軍) 연합부대의 핵심으로서 이민영(李麟榮) 의병장을 선봉으로 무신년(1908) 1월 서울 진격 작전을 감행하는 등 국권수호를 위해 투쟁하였다. 민족의 보존과 조국의 존립을 위해 자기 한 몸을 기꺼이 바친 원주지역 선열들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계승하는 책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고, 그들의 호국정신은 치악산이 다 닳고 성장물이 마르도록 원주인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건립일: 2007년 10월 26일 / 건립 : 원주시장 김기열 / 후원: 항일독립운동 원주기념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