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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사실상의 종식은 1918년 11월경이었는데 그 당시 일제는 전후 평화회의가 열리게 되면 한국문제가 등장될 것이라는 점을 미리 내다 보고 그 대비책으로 이완용을 정당대표로 김윤식을 유림대표로한 독립불원서를 조작하여 일본 정부에 제출케 한 사실이 있었다. 이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은 서울 유림들은 일제이 이러한 간계를 분쇄하기 위하여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해야겠다는 움직임이 여기 저기서 싹트고 있었다. 이 무렵 면우 곽종석의 문인 윤충하는 서울에서 이러한 움직임을 보고 1919년 2월 19일 거창으로 곽종석을 찾아갔다. 파리평화회의에 대한 내용과 전망 그리고 독립불원서 문제로 인한 서울 유림들의 동태를 자세히 보고하면서 이즈음에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여 국제여론에 호소하는 것이 우리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과 또 곽종석이 이 운동에 대표가 되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