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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자 일제에게의 세금납부를 거부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군청에 호출되자 당시 거창군수 유상범에게 「나라가 망하고 국왕이 업거늘 누구에게 세금을 바치느냐」고 꾸짖고, 「너같은 친일파는 나의 뜻을 꺾지 못한다」고 힐책하였다. 일제 헌병대가 그를 연행하여 강제로 무인을 찍히자 귀가 후에 「자귀」로 자기의 엄지손가락을 절단해 버렸다. 1919년 1월 21일 광무황제가 서거한 소식을 듣고 흰 갓을 쓰고 선영에 참배한 다음 면사무소에 가서 호적 열람을 요구하여 찢어 버리고 거창읍 침류정에서 사세시1편을 남기고 「자귀」로 목을쳐서 자결하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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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의사 사적비(李柱煥 義士 事蹟碑) 본향(本鄕)은 합천(陜川)[또는 강양(江陽)]이며 호(號)는 연호(連湖)이다. 1854년 거창군, 주상면 연교리에서 태어나 8세 때 한학에 입문 소학과 충효의 도를 익혔으며, 1910년 5월 일제강점기에 납세 거부 운동을 펴다 일본 관헌(官憲)에게 잡혀가 협박 끝에 강제로 무인(拇印)을 찍게 되자 자신의 엄지 손가락을 잘랐다. 또한 1919년 1월 22일 고종황제가 원통하게 세상을 떠나자 8일 후인 1월 30일 선영에 성묘를 마치고 주상면사무소를 찾아가 자신의 민적(民籍)을 찢은 뒤 이곳 침류정(流流亭)에서 절세 시 한 수를 남기고 자귀로 목을 쏘아 자결하였다. 이 의사(義)는 절세 시에서 "나라도 임금도 없는 외로운 백성, 슬프게 바라우는 가련한 정이 로다. 삼천리 강토가 비록 넓다고 하나, 70늙은이는 떳떳하게 다닐 수 조차 없구나(중략), 지하에서 우리 임금 모실 것을 맹세하노라"라 하였다. 이 사적비는 1995년 봄 이 의사(義士)의 우국정신을 길이 빛내기 위해 뜻있는 거창 군민들이 "이주환 의사 순절사적비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 의사 순절 75주년을 맞아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건립하였다. 거창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