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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의 수감생활 수감자의 생활공간 - 수감자의 생활공간은 감방과 공장이었다. 수감자의 하루는 대부분 노역이었고 하루 30분의 운동시간이 주어졌다. 편지는 한 달에 한 번밖에 쓰지 못했다. 감방은 가장 넓은것이 13㎡ 크기였다. 이 같은 좁은 방에 40~50명을 수용하여 잠도 교대로 자야만 했다. 감방 내부에는 별도의 화장실이 없어 나무로 만든 통에 볼일을 해결하였다. 채광과 통풍이 되지 않았고 난방 또한 없었다. 여름철에는 더위와 각종 질병으로, 겨울철에는 추위와 동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병사하였다. 수감자의 식사 - 수감자의 밥은 콩 50%, 좁쌀 30%, 현미 20%의 비율로 하루 3회 배급되었다. 노역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세 끼를 모두 공장에서 먹었다. 밥의 양은 형량과 노역 강도에 따라 1~9 등급으로 나누어 배급하였다. 각 등급별로 깊이가 다른 원통형의 틀에 밥을 찍어 배급하였다. 이 때문에 감옥의 밥을 일본어로 틀이라는 뜻의 '가다'(型)를 붙여 '가다밥'이라고 불렀다. 비인륜적인 고문 자행 - 주리틀기, 못이 박힌 상자에 가두고 흔들기, 물고문, 손톱 밑 찌르기 등 70여 종의 비인간적인 고문이 독립투사들에게 자행되었다. 애국지사들은 이러한 위협과 고통 속에서도 꿋꿋한 지조를 보여주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은 혹독한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되면서도 웃으며 고문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