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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우 곽종석 선생의 삶 면우 곽종석(1846.6.24 ~ 1919.8.24) 곽종석 선생은 1846년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초포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성리학 경전을 비롯한 역사서는 물론 정치, 제도, 군사, 의술 등 다양한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다. 영남의대 유학자인 한주 이진상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학을 계승해 한말 대표적인 유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 조약의 폐기와 조약 체결에 참여했던 을사오적을 처형하라는 상소문을 올렸다. 1910년 일제의 강압으로 한일병합이 이루어지자 비분함을 달래지 못하고 은거하여 제자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후 3·1운동을 맞아 민족대표 33인에 유림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통분해 하던 중 독립을 염원하는, 유림의 뜻을 하나로 모아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할 독립청원서를 작성했다. 이 독립청원서에는 현우 선생을 필두로 김복한 선생 등 유림대표 137인의 서명이 담겼고 제자 김창숙 선생에 의해 상하이를 거쳐 파리의 김규식에게 전달됐다. 파리장서 운동의 주동자로 체포돼 대구 감옥에 수감되어 2년 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7월 19일 병보석으로 풀려 났으나 8월 24일 74세의 일기로 서거하였다. 저서로 「면우문집」이 있으며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면우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단성에 이동서당, 거창에 다천서당, 곡성에 산앙재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