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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문(檄文) 하늘이 무심하여 나라는 암흑(暗黑)의 운을 당하매 섬나라 왜놈이 그 틈을 타 쳐들어 오니 백성들은 실로 위급한 때를 만났구나. 늑대의 이빨과 독사의 독이 나라 안에 깊이 퍼져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들을 수 없으니 삼천리 강산에 덮힌 위급함은 조석에 달렸노라. 슬프도다 , 2백년 동안 다져온 나라의 기초가 흔들려 선조(宣祖) 임금은 파천하였으니 어느 백성인들 통분의 한이 없으리오. 단신(單身)으로 이곳에 온 나 또한 국가에 몸 바칠 뜻이니 임금의 원수를 어찌 잠깐인들 잊을 수 있으리. 신하된 도리로 물과 불에라도 뒤따라 뛰어 들겠노라. 이곳 호남(湖南)은 일찍기 이 나라의 왕업이 창건된 곳이다. 도순찰사는 군사를 거느리고 출동하지 않았으니 국가에 끼친 죄를 면할 길이 없도다. 백성들은 이미 적에게 해를 입었으니 어찌 어진 사람 있는 나라라 하리요. 아아. 슬프다. 모든 고을의 남아들이여! 나라에 충성를 맹세하자. 나는 국사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피를 토하고 눈물 지어 내 하찮은 몸 돌보지 않고 두려움 없으나 이리떼같은 적의 세력이 날로 방자해지고 비대하여 횡행하는 이때. 오합지졸과 같은 지금의 군사만으로는 참으로 무찌르기 어렵기만 하도다. 이에 의병을 모집하노니, 피로서 맹세하여 저 흉적을 물리침에 온 힘을 대하여 토벌하도록 하자. 우리들의 충성심을 다해 선조(先祖) 대대로 물려온 이 산천를 다시 맑게 하고, 다시 사직(社稷)을 반석 위에 세움으로써 우리의 공명(功名)을 길이 청사에 남기도록 하자. 나와 함께 나아가 왜적를 토벌할 사람은 서둘러 지정된 날자에 모여주기 바란다. 1592년(壬辰) 6월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