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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열사께서는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인창리에서 생장하시었다. 호국정신으로 한국진위대에 입대 강화 파견대 부교로 복무 중 서기 1907년 일제 책동으로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이에 통분 동년 8월 9일 이동휘 지홍운 유명규 등과 구국을 다짐한 후 부하를 인솔 일본 무기고를 파괴하고 강화도를 완전 장악하였으나 역공으로 실패하고 부하 60여명을 인솔 장단 덕물포에서 의병을 창의 한북군이라 명칭하고 열사는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항쟁하다가 이인영 허위 외 여러 의병장과 전국 8도 의병진을 통합 형성 구축하여 서울 동대문 밖 30리 지점까지 진격하다 일군의 화기 열세에 몰려 패전당하였다. 1908년 12월에 강기동 의병진과 연합 300여명을 인솔 포천군 송우리 등지에서 일헌병과 고전 중 아우 선봉장 연기철은 전사하고 부하 이백만은 체포 수속되며 부친 연성한도 피살되었다. 열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부하 현학인이 일헌병 보조원 최영복과 내통 무기 및 실탄을 구입하여 이진용 부대와 합류 전국을 누비며 일병을 살상 괴롭히다가 끝내는 비참하게도 순국하시다. 이로서 정부에서는 1963년 3월 1일 건국공로훈장 복장을 추서하고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 무혈손 충훈사묘 제단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후수 광복회 경기도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