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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   관철될 때까지 항전을 계속할 것임을 천명하기에 이른다.25) 그러나, 허위는 이와 같은 원대한 포부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1908년 6월 11일 그의 은신처를 탐지한 일제에게 포로로 잡혀 영어(囹圄)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의 휘 하에 있다가 포로가 된 한 의병으로부터 그의 소재를 탐지해낸 철원헌병대에 의해 영평군 (永平郡) 서면(西面) 유동(柳洞)에서 피체되고 만 것이다.26) 서울로 압송된 허위는 일제 헌병사령관 명석원이랑(明石元二郞)의 심문을 받게 되었다 . 이때 그는 두려워하는 <허위 의병(후기)의 주요활동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