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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빛나는 지도자이신 선생은 우리의 민족과 조국을 사랑하시고 나아가서는 세계의 근로대중과 만인을 사랑하고 화해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미워하지 않는 가장 훌륭한 인간적 덕성을 가지신 애국자이시며 진보적 민족주의자이시였다. 선생은 서기 1886년 음 4월 22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서 임진왜란 후 최초의 순호사로 일본에 갔던 여우길의 10대손인 천현과 임진왜란 때 일등공신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의 11대손녀인 이씨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한문을 배우셨고 신학문에 뜻을 두시고 배재학당과 흥화학교에서 공부를 하시던중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단연운동 국채갚기운동을 하시며 1907년에 광동학교를 세우시고 교장이 되시었으며 양친의 3년상을 마치신 후 조상의 신주를 매장하고 노비를 해방하는등 봉건제도에 대한 사회혁명의 봉화를 들었으며 다음해 강릉속초의숙의 교사로 계시다 서간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돌아보시고 서북간도각지를 순방하시면서 조국광복의 웅지를 펴보고자 결심하시고 중국남동금릉대학에 입학 장래의 큰뜻을 펴 기초를 닦기 시작하셨다. 1918년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조직 당수에 취임하시여 우리 민족 광복운동의 거보를 출발시키셨다. 1919년 1월 구사 김규식 박사를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천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