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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옛집터 옛집터 :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 733-4 / 현주소 : 도봉구 도봉로 595-1 정인보(1893년 5월 6일~1950년 9월 7일)는 서울의 동래정씨 명문가에서 태어났으며,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초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한학자이다. 당대 양명학의 대가 중 한명인 이건방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한일병합 직후에는 상하이로 건너가 박은식, 신규식 등과 함께 동제사를 조직을 결성하여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귀국 후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한학과 역사학을 가르쳤으며, 동아일보와 시대일보의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특히 신민족주의 역사가의 대표인물로서 우리 민족의 고전을 널리 알리는 데에 노력했으며, 1930년대에는 조선학운동을 일으키면서 조선후기 실학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였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창동리에 은거했다. 1947년 국학대학의 학장이 되었고, 이승만 정부가 들어선 후 초대 감찰위원장에 선임되었으나, 정부의 간섭이 심해지자 사임하고 국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6.25전쟁 때에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사망하였다. 김병로, 송진우와 함께 창동의 세 마리 사자로 불렸으며, 삼일절 노래, 제헌절 노래, 광복절 노래의 작사가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