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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되자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중영의연합군과 함꼐 하여 특수훈련을 마친 대원들을 조국본토에 밀파하려던 직전인 1945년 을유 8월 15일 조국이 광복을 맞이하였다. 장군은 중국에서의 한교문제 처리 등으로 인하여 1947년 4월에 비로소 한 많은 조국의 땅을 밟았으나 국내정세는 몹시 혼란하였다. 장군 젊은이들의 대동단결만이 어리러운 조국의 앞날을 헤쳐나갈 길이라 생각하고 난립된 청년단체들을 통합하여 대동청년단을 결성하고 단장에 추대되었다. 뒤에 제헌및 2대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57년 정유 1월 15일에 서거하니 춘추가 70세였다. 서울 북한산밑 수유동 애국지사 묘역에 사회장으로 안장하였고 정부에서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되었다. 부인 파평윤씨는 원기의 딸이니 부공의 광복운동에 내조가 컸으며 묘는 부장되었다. 두 아들은 달수 정계요 두 딸은 선영 복영이요 두 사위는 심광식 이재석이요 세 손자는 상용 상우 상철이다. 장군이 서거한뒤 30성상이 흘렀으나 묘전의 단석에도 행적이 새겨져있지 않았으므로 그 영풍과 위훈이 점차 연멸될까 두려워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이제 충주지씨 종회에서 뜻을 모아 기적비 건립위원회를 조직하여 일을 진행할제 위원장 청진과 간사 을용군이 장군의 행략과 세보를 갖고와서 나에게 글을 청한다. 나는 일찍부터 장군의 성명을 들어 알았고 이제 또 지씨 제종의 진진한 정성에 감명깊어 이 두 문자를 참고하여 서술하고 뒤에 명을 붙인다. 장군의 이름 청천은 넓은 襟懷(금호) 이름이요 장군의 雅號(아호) 백산은 높은 기상 새겼도다. 푸른 하늘 우러르며 흰메 우뚝 솟았도다. 그 위의 낙락장송 더위 잡기어렵도다. 靑歲(청세)에 대지 품고 현해탄을 멀리 건너 새로운 병서 일고 신기로운 책략익혀 칼짚고 일어서니 가을 바람새맬러라 뼈를 깎고 살 개씹어 遼風○雪(요풍○설) 몇해런고 산하 백전 불굴하여 높은 공적세운뒤에 백발을 휘날리며 조국을 찾았으나 국토는 양단되고 사회는 혼란토다 청년단체 규합하여 그 장에 추대되고 의정단상 올랐으나 그 뜻을 다 못폈소 통일과제 풀지못해 천추의 한을 품고 북한산 멧기슭에 홀홀히 잠드신지 30성상 흐른 오늘 꽃지고 구름옐제 그 英風(영풍) 그 巍勳(외훈)이 연멸될까 두려웁소 제종이 뜻을 모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