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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음악가 채동선 민족음악가 채동서(1901~1953) 선생은 이곳 벌교에서 태어나 순천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지금의 경기고등학교인 제일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하였다. 이떄 홍난파의 바이올린 독주에 매료되어 1년동안 홍난파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던 중 1919년 3.1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하였다가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이를 피해 일본에 유학길에 오른다. 1924년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바이올린 수업을 계속하였고, 1926년 독립 슈테르센 음악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1929년 귀국하여 4차례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1932년에 가곡 '고향'을 발표하였고 1937년 일제의 감시와 제재가 더욱 심해지자 서울 근교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주로 민요등 민족음악의 채보에 힘썼다. 1953년 부산 피난생활중에 신병을 얻어 53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채동선선생이 남긴 주옥같은 작품으로는 '고향(그리워, 망향)', '조국', '독립축천곡','개천절','한글날','3.1절' 노래 이외에도 '진도아리랑', '도라지타령'등 수 많은 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