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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과 울산공업고등학교 울산의 4.19혁명은 울산농림고등학교(현 울산공업고등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 4월 25일 오전 8시, 울산농림학교 학생 150여명은 당시 복정동에 있던 울산경찰서로 행진했다. 울산농림고가 앞장서 거리시위에 울산 읍민과 울산여자중.고등학교, 중산중학교 학생들이 합류했다. 시위대는 경찰서, 군청, 언론사등을 돌며 부정선거 책임을 물었다. 그리고 대통령 하야와 고문경찰 체포, 구속학생 석방등을 요구하였다.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했지만, 울산농림고 학생들이 불붙인 울산의 시위는 남구, 언양, 온양 등지로 확대되며 4월 29일까지 계속 됐다.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경찰, 공무원, 반공단체와 자유당 인사들에 대한 처벌과 사퇴를 요구했다. 서울 경무대앞 시위에 참여했다 총상을 입고 치료중 사망한 울산농고 출신 정임석의 유해는 4월 28일 울산에 도착했다. 그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가 다시 울산 전 지역에서 벌여졌다. 5월 3일 울산농림고 학생들은 '3.15부정선거'에 가담한 교사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동맹휴학에 들어갔고, 울산지역 중고등학교 학생 2,500명과 함께 울산경찰서로 행진하며 부정선거에 가담한 경찰과 공무원, 정치인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처럼 1960년 봄, 울산학생들은 울산4.19혁명의 주도세력이었다. 그 후 7월말 새로운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앞장섰던 울산 농림고를 비롯해 울산지역 학생들은 4.19혁명의 정신을 지키기 위한 민주주의 행동을 계속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