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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3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남로당은 무장공비들을 동원하여 제주도에서 폭동을 일으킨다. 이른바 4·3사건이다. 폭동 진압작전을 하던 11연대장이 부대 내에서 부하들로부터 암살되는 등 소요사태가 장기화되던 5월 14일, 백인기 중령은 군산에 주둔 중인 제12연대장으로 임명받고 부임한다. 사태의 추이로 보아 자신도 제주로 출동할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9월 20일에 한 편의 시를 남긴다. 출사표다. 시제(詩題)는 '진순대 화랑(鎭舜臺 花郞)' “백두산의 눈은 볼 수가 없으나/ 한라산의 아지랑이는 그 모습이 보이네/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는 누가 찾을거나/ 38선이 그어져 조국이 어려움에 빠져 있네/ 남아 20세 분발하여 일어날 때이니/ ~돌진 돌진 오직 돌진뿐/ 관속에 들어가 청사(靑史)의 평(評)을 기다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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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달이 지난 10월 19일, 4·3폭동의 진압명령을 받은 14연대가 제주로의 출동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여수 순천 반란사건이었다. 14연대는 남로당 전남도당이 모병 때부터 공작한 결과 사병의 절반 이상이 남로당원으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백인기 연대장은 이 반란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10월 25일 새벽에 출동명령을 받는 그 즉시 생후 백일 정도밖에 안 된 아들에게 유언장 같은 시 한 편을 다시 남기고 집을 나섰다. “남아 대장부로~명령을 받고 출정에 오르던 날/ 나는 너에게 남아가 경계해야 할 세가지 교훈을 남기노니/ 첫째는 옳은 것을 보고 실행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친구를 생각하되 사랑하지 않음이요/ 셋째는 자신을 반성하되 고치지 않음이다/ 너 승험은 이를 명심하여라/” 출처 : 대전일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