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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 소통에 관하여소통에 관하여 글 소령 윤시영 ● Story _ Review ROKMC 38 VOL. 36 사선을 넘나든 그들. 이들은 말 그대로 생과 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 긴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이들이 생사가 교차하던 전장에서 살아남아 승리하여 무적해병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용변을 보더라도 항상 삽으로 덮어서 흔적을 안 남겼고, 담배 한 개 비를 피워도 꽁초를 완전히 분해해서 흔적을 없앴어. 또 항상 몸을 충 분히 숨길 수 있는 참호를 파서 대비했고. 그렇게 훈련을 받았고 또 그 렇게 행동을 한 거지. 그래서 살아남고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아. 땀 흘 려 훈련받은 만큼 피를 적게 흘리는거. 그것이 진리지.” (김동학, 78세) 비록 백발이 성하고 너무나 왜소해진 80대의 노해병들이었지만, 60년 전 이야기를 하는 그들의 눈빛은 너무나 생생했다. 점심 무렵부 터 노해병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다 보니 어느덧 창가로는 붉은 노 을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제주도의 청소년 3천명이 대한민국을 목숨을 바쳐서 지켜냈다는 거, 이거 하나는 대한민국이 기억을 해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누가 군 대를 가라고 해서 간 게 아니었어. 오로지 나라가 워낙 위태해서, 또 우리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서. 누구의 강요가 아닌 우리 뜻으로 그 길을 선택한거지. 그런 정신으로 갔기에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정 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서 해냈던 거고.” (김형근, 78세) 그들의 눈빛엔 대한민국을 지켜냈다는 자긍심과 함께 누가 그들 을 기억해 줄 것인가에 대한 걱정도 담겨 있었다. “젊은이들이 외치는 자유, 번영, 진보. 그 모든 것은 나라가 있어야 가능 한 것이거든. 그 나라가 없어질 뻔 했던 일이 불과 60년 전이야. 그 위기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때 나라를 구하기 위 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말아 줬으면 좋겠어. 이들을 기억해주는 나라가 되어야, 그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사람 들이 홀연히 또 일어서서 나라를 구하는 거야.” (김동학, 78세) 60년 전 4·3사건의 아픔이 채 아물지 않았던 제주도. ‘빨갱이’ 라는 오명에 몸서리치던 순박한 섬사람들은 나라에 위기가 쳐하자 홀 연히 떨쳐 일어섰다. 중학생, 고등학생, 교편을 잡고 있던 이, 농사를 짓고 있던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해병대에 입대하겠다고 손을 들었 다. 생전 섬을 떠나본 적도 없는 촌사람들이 처음 밟은 뭍은 포탄과 피비린내 진동하는 전장이었다. 그로부터 3년, 순박한 섬사람들은 어 느새 귀신 잡는 해병, 무적해병 등의 칭호를 얻는 무적불패의 해병대 신화를 남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죽은 자도 있고, 산 자도 있었다. 전 쟁이 끝나고 60년이 흐른 오늘, 살아남은 노해병들은 죽은 자들이 없 어질 뻔한 대한민국을 구한 사람들이라고 얘기하고 또 얘기한다. 하 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였다. 산 자도 죽은 자도, 그들은 모두 대한민 국을 구한 해병 3·4기였다. 과거는 세월의 바람결에 쓸려 점점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다. 6· 25전쟁의 슬픔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도, 서울 수복의 환희도, 도솔 산의 신화도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저 먼 옛날의 이야기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제주 해병 3·4기의 이야기를 백발이 무 성한 노해병들만의 기억으로 남겨두기엔, 그들이 되찾아준 대한민국 의 소중한 가치와 그들이 쌓아올린 해병대의 명예가 너무나 커 보이 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