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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였다. 풍수지리를 통해 조선 최고의 명당인 화산기슭으로 옮겼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의 융, 건릉이다. 융릉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 씨를 합장해 모신 능이다. 정조는 아버지를 ‘사 도’로 추존하였고 1899년(광무 3년)엔 ‘장조’로 추존되었 다. 묘도 화산으로 이장하면서 ‘현륭원’으로, 다시 장조로 추존된 뒤 능호를 지금의 ‘융릉’으로 높이게 된다. 그리고 능에서 1.5km 떨어진 바로 옆에 용주사를 지어 비명에 간 아버지의 능을 지키고 명복을 빌었다. 원래 용주사는 정조가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父 母恩重經)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받아 병자호란 때 소실된 갈양사(신라 문성왕 16년(854) 창건) 터에 지은 절이다. 낙 성식 날 정조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 꿈을 꾸면서 이름이 용주사(龍珠寺)가 되었다. 건릉은 정조와 부인이 사후에 합 장된 능이다. 본인도 부모님 곁에 잠들어 영원히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면서 기존의 거주자들은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들을 위해 정조는 이전 보상금을 지급 하여 북쪽으로 20리 떨어진 지금의 수원으로 이주시키면서 수원 읍치를 함께 옮겼다(당시엔 화산에 수원 읍치가 있었 다). 정조는 아버지 묘를 자주 찾아 참배하기 위해 팔달산 주변에 화성을 축성하기에 이른다. 물론 당파정치 근절과 왕권강화,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는 면도 있으나, 아버지에 대한 지극정성과 뜨거운 효심이 축성의 근본이 되 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이 바로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이다. 세계적으로 총 148개국 890건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고, 우리나라는 석굴암·불국사, 창덕궁, 고창·화순·강 화 고인돌 유적,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조선왕릉 등 9건 이 있다. 수원 화성은 정조 1794년 1월에 시작하여 1796년 9월에 완성하였다. 성의 길이가 총 5,744미터이며, 면적은 130ha 이다. 문화재청 인터넷 홈페이지의 소개자료에 의하면 ‘화 성은 축성 시의 성곽과 성의 골격이 그대로 현존하고 있으 며, 군사적 목적 외에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 심으로 성곽 전체가 “효”사상이라는 동양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와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이라 소 개되어 있다. 화성 축성에 관한 내용은 화성성역의궤에 매 우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정조는 12년간 13차례에 걸쳐 아 버지 묘를 참배하였다. 그 옛날 서울에서 수원까지 행차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생각해 볼 때 정조의 효심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바깥 나들이 하기 좋은 계절이다. 자녀들과 함께 융· 건릉과 용주사, 수원 화성을 밟으며 20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정조의 애끓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죽어서라도 부 모님을 모시려는 지극한 효심을 느껴보자.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과 정조의 효(孝) 57 융릉 : 조선 정조(正祖)의 아버지 장조(莊祖, 思悼世子)와 그의 비 경의왕후(敬懿王后)의 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