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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대표하는 말 중의 하나로 ‘효원의 도시’라는 말이 있다. ‘효’라 함은 부모님께 예를 다하고 살아 생전에 극진 히 모시고 돌아가셨을 땐 마음으로 명복을 비는 것일 께다. 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세상에 존재해 왔으며 인륜 의 중요한 덕목이다. 역대 왕 중에서 조선 제22대 왕 정조 (이산)는 효심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러한 정 조와 효의 도시 수원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잠시 정 조시대의 역사속으로 들어가 보자. 정조는 영조의 손자로 아버지는 장헌세자(사도세자), 어 머니는 영의정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 씨로 1752년에 태어 났다. 1762년 2월에 좌참찬 김시묵의 딸 효의왕후와 결혼하 였으며, 그 해 5월에 11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죽는 모 습을 보게 된다. 아버지는 세자이면서도 당쟁에 휘말려 왕위에 오르지 못 하고 할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어린 정조가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면, 가히 끔찍한 일 이 아닐 수 없다. 자기 자식을 그렇게 죽일 수 있다니… 영 조는 장헌세자를 양주의 배봉산(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휘경 동)에 묻고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묘 이름을 수은묘라 하였다. 유년시절에 비명에 간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 속에 성장한 정조는 왕으로 즉위 후에 ● 해병대 _ 56 June2010 장병기고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과 정조의 효(孝) 글 해병대사령부 중령 김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