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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을 회고하며 비하고 기다렸다는 듯 ‘6·25전쟁의 전설적인 영웅’ 김성 은 대령은 마산 진동리와 통영 전투에서 첫 승리의 개가를 올렸다. 이 승전보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피난길에 나섰 던 이 나라 국민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안겨 주었다. ’50년 8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45일간 벌어진 마산 서북지역 진동리(현 마산시 합포구)와 통영지구 전투에서 김성은 부대는 봉암리 계곡을 거쳐 8월 2일 새벽 고사리지 서에 지휘소를 설치했다. 전차를 앞세운 인민군 6사단 차 량부대가 예상대로 3일 밤 접근하자 유인 사격으로 정찰대 대를 궤멸시켰다. 그 후 6일 새벽 인민군 6사단이 야반산 을 점령해 우리 병참선이 위협받자 다시 김성은 부대가 야 반산을 탈환하고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여 인민군 6 사단을 재기 불능케 하는 큰 전과를 올렸다. 이는 6·25 개전이래 최초의 반격작전으로 평가된다. 신생 해병대의 첫 전과에 고무된 손원일 제독은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김성은 부대 전 장병에게 국군 최초 1계급 특진의 영 예를 주었다. 35 여기서 김성은 부대가 인민군 6사단을 저지 격멸한 것 은 이 부대가 그 무렵인 7월 27일 육군 영남편성관구사령 관이던 채병덕(전 육군총참모장) 소장을 하동 근처에서 전 사시킨 적군이었으므로 그 분의 원한을 우리 해병대가 보 기 좋게 갚았다는 사실이다. 또 우리 해병이 진동리전선에 서 처음으로 미 해병부대를 만남으로써 창설 초기의 걸음 마 단계를 벗어나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행운을 잡았다면, 통영상륙작전은 한국 단독 최초로서 김성은 부대장의 순 발력 넘치는 지휘로 큰 승리를 거둬 그 후 인천상륙작전에 우리 해군과 해병이 함께 참전하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통영상륙작전 당시 나는 미국에서 도입되는 704함의 부장으로 태평양을 건너 ’50년 7월 25일 진해에 입항하자 마자 다음날인 26일 이미 선착(先着)한 703함과 합류해 진동리 및 통영상륙작전 지원을 위해 투입됐다. 이를 통해 김성은 선배와 나는 백년전우로서 인연을 굳혀나갔다. 이 통영상륙작전에서 우리 해병대는 승기(勝機)를 잡고 무적 해병으로서 6·25전쟁의 전면에 나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