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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 www.rokmc.mil.kr | 해병대 장교 육성의 요람 장교교육대대 생면부지의 사람을 처음 만나 사랑하기는 쉽지 않았 지만, 지금 나의 일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소 명을 바탕으로 처음 사랑을 주기 시작하니 어느새 한 가족과도 같음을 느끼게 되었고, 사관후보생 104기부 터 지금 교육하고 있는 107기까지 어느덧 수백 명의 자식을 가진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님의 마음이 바로 이럴까. 임관을 시키고 실무부 대로 내보내는데 가슴이 미어지고, 알 수 없는 이유로 눈물방울이 맺히는 것. 2년동안 수백 명의 딸들을 해 병대 각 부대로 시집보냈고, 가끔씩 의젓해진 모습으 로 친정집에 찾아오는 후배장교들이 너무나 고맙고 반 가워 맨발로 맞이하는 나를 바라볼 때면, 어린시절, 부 모님과 외갓집에 들를 때 할머니께서 하시던 모습과 왜 그리 흡사한 건지... 웃음이 베어난다. 장교교육대대에서 2년간 근무한 나는 이제 부자가 됐다. 여느 선생님이 나와 같을까. 우리는 스승과 제자 사이를 훨씬 뛰어넘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고,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보배와도 같은 존재들임에 틀림없다.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이해타산 없이 그저 지난날 을 같이 돌아보고 추억을 곱씹을 수 있는 친구와도 같 은 사람들이 무수히 많아졌으며, 이제는 어엿한 장교 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해병대를 이끌고 나가는 주역 들이 내 마음속에 건재하다. 이러한 후배들이 나를 더욱 채찍질 하게 하는 힘이 된다. 이제는 선후배 장교로서 같이 술 한잔 기울이는 사이가 되었지만, 한때 그들 앞에 서서 등만 바 라보고 따라오라는 이야기를 하며 뛰어가던 사내가, 쪼그려 앉아 있거나 고꾸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이 름모를 부담감들이 긍정적인 자극이 되어 아무리 지치 고 힘들어도 나를 한걸음 더 나갈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이제 나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었던 장교교 육대대를 떠난다. 집보다는 부대에서 더 많이 먹고 자 며 힘들었지만, 교육생들과 함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시간. 그러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다른 장소에서 다른 임무 수행을 위해 떠나려 한다. 막상 떠나려 하니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드는 건, 내가 미쳐 교육생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면 그동안 나를 누르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짐을 내려놓음에 느 끼는 홀가분함일까. 교육을 시키는 사람도, 교육을 받 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바뀌겠지만, 이곳 장 교교육대대는 해병대 장교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 에 남아, 서로 다른 우리가 만났을 때 함께 추억을 공 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다. 앞으로 장교교육대대 소대장이 될 후배들의 건승 을 빈다. 힘들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때 보 람과 긍지를 찾을 수 있으며, 장차 해병대를 이끌어 나 갈 씨앗에 싹을 틔운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와 같은 노력을 계속 이어 나가줄 것을 당부한다. ▲ 장교교육대대 입구 전경 ▲ 교육생들을 지휘하고 있는 박성완 대위 해병대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근무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