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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99 9월말의 시점에 북한의 붕괴를 막기 위해 김일성과 북한 지도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소련과 중국에 대해 파병을 요청하는 것 외에는 아무 대안이 없었다. 김 일성과 박헌영은 9월 29일과 10월 1일에 각각 스탈린과 모택동에게 병력을 직접 파병함으로써 북한을 지원해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썼다. 88) 스탈린은 소련군의 직 접 참전으로 인한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고자 했기 때문에 모택동에게 최소한 5~6개 사단의 병력 파견을 통해 북한 붕괴를 막도록 촉구했다. 중국지도부 내부 에서의 참전론과 전쟁불가론의 대립, 참전론을 주장한 모택동의 의지 관철 노력, 중국의 최초 참전의사 변경, 북한에 파견하는 중국군의 무기지원 및 소련공군의 항공엄호 문제를 놓고 10월 1일부터 10월 14일까지 북경의 중국지도자들 내부에 서, 그리고 북경과 모스크바 사이에서 벌어진 모택동, 주은래와 스탈린 사이에서 참전조건을 두고 벌어진 줄다리기에 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89) 여기서 재차 이 문제를 자세히 논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국군의 파병만이 한국문제의 해결에 있어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스탈린은 중국군이 북한에 도착하기도 전에 북한군이 붕괴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눈앞의 상황에 낙담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 고 있는 것 같았다. 슈티코프 대사와 자하로프 특사는 북한지도자들에 대해 실망 한 채 적극적인 사태 수습계획도 세우지 않고 북한문제에 대해 비관적 태도를 보 였다. 그는 10월 1일 슈티코프와 자하로프에게 그러한 방관자적이고 비관적인 태 도를 엄중히 꾸짖는 전문을 보내 북한의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 대책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명령에는 적어도 38선 이북의 한반도만은 확보해야 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드러나 있다. 슈티코프, 자하로프와 북한 지도부가 취해야 할 여러 조치들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이 전문은 길지만 전체를 인용할만한 가치 87) Torkunov, Zagadochnaia voina, p.89. 88) 외무부 역, 「한국전쟁 문서요약」부록 「김일성-스탈린-모택동간의 전문 및 서신」. 김일성 이 모택동에게 보낸 10월 1일자 서신은 10월 3일에 전달되었다. 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 사연구부 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역, 중국군의 한국전쟁사 제1권, 223~225쪽. 89) 중국참전을 둘러싼 중국내의 참전 찬성파와 반대파의 의견대립, 참전 조건을 둘러싼 중 소간의 협상 과정에 대해서는 선행연구에 의해 그 과정이 상세히 밝혀졌다. Sergei N. Goncharov et als., Uncertain Partners: Stalin, Mao, and the Korean War (Stanford, Californi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3), Ch. 6; Chen Jian, China's Road to the Korean War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Ch. 6; 군사편찬연구소 역, 중국군의 한국전쟁사 제1권, 제10장; 서상문, 모택동과 6·25전쟁: 파병 결정과정과 개 입동기 (서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6), 180~2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