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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97 27일 김일성을 만나 앞으로 평양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으 로 보인다. 79) 9월 27일에는 또한 남쪽에서 오산으로 북상한 미군 부대와 서울에 서 남하한 미군 부대가 제1군집단에 대한 포위망을 완성했다는 보고가 들어와 있 었다. 80) 소련측은 아직 미군이 서울 점령이후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를 판단할 만한 첩보는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9월 26일 UN에서 영국의 주도로 제출된 ‘한 반도 통일을 위한 결의안’은 매우 완곡하게나마 UN군이 북한 지역까지 통일의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었다. “전 한국의 안정을 위한 조건을 만 족시키기 위한 모든 적절한 방법이 취해질 것이다.” 81) 슈티코프는 서울방어 작전 에서 예비부대들이 소모된 상태이고 만약 미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격한다면 이를 저지할만한 부대가 거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9월 28일 모스크바에 보낸 보고서에서 “미군사령부가 인민군 부대의 저지선을 돌파하고 평양으로 진격 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평양방어력 강화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예 비 병력은 없는 상태다”라고 전하면서, “현 상태로는 모든 상황이 미군을 38도선 에서 저지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계획대로 진격이 이루어진다 면 필시 평양에 공격력이 집중될 것이다. 평양 포기 문제를 김일성과 논의했다. 그는 놀란 표정이었다”고 썼다. 82) 이즈음에 김일성을 포함하여 모든 북한 군인들은 희망을 잃고 있었다. 김일성 도 미군이 38선을 돌파해 북진해 올 것인가 아니면 멈출 것인가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슈티코프에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다. 슈티코프 는 그것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38도선 방어선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83) 김일성도 북한에서 예비부대를 신편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그 부대들의 군인들 상당수는 소총도 없이 목총으로 훈련받고 있는 부대라는 것 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정규군을 지휘해 미군을 막는 것은 거의 절망적이라고 79) 이 날짜가 7월 27일이었는지, 7월 28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그 대화 내용은 9월 28일에 모스크바에 보고되었다. 80) Zhurnal, 1950년 9월 27일자. 81) 김계동,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민족분열과 국제개입․갈등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335~336쪽; Clay Blair, The Forgotten War: America in Korea 1950~1953 (New York: Anchor Books, Doubleday, 1987), p.328. 82) 코로트코프, 스탈린과 김일성 제2권, 74쪽. 83) Torkunov, Zagadochnaia voina, p.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