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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93 주은래는 9월 20일 평양 주재 중국대사 예지량을 통해 북한에 다시 전략 조언 을 했다. 그는 북한이 신편 사단들을 편성해 장기전을 준비하는 것은 좋은 방안 이며 속결전을 버리고 장기지구전으로 나가야 전쟁에 승산이 있다고 했다. 동시 에 그는 주력을 신속히 철수시켜 보존함으로써 반격부대를 만들고 반격을 할 때 는 우세한 병력으로 적은 규모의 적을 섬멸전으로 타격하여 작은 승리를 쌓아나 가야 한다고 작전방법에 대해 한 수 가르쳤다. 요컨대 그의 전략 조언은 주력을 신속히 철수시켜 주력을 보존하고 장기전에 돌입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72) 결국 김일성은 9월 23일 제1군집단(제1군단)은 공격과 퇴각을 동시에 시행하면 서 축차적으로 금강 이북 충주-서울 방어선과 음성-조치원선 방어선을 구축하고, 제2군집단(제2군단)은 소백산맥 지역까지 철수시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고 신속 히 보충 부대를 집결시켜 적을 괴멸시킬 기회를 노린다는 결정을 내리고, 이에 따라 낙동강 방어선의 전 부대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명령이 전선사령부에 실제로 수신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73) 9월 23일 이후 다시 전선사 령부와의 무전 교신이 단절되어 평양에서는 그 후 25일 잠시동안을 제외하고 29일 까지 전선사령부와의 교신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김일성은 9월 23일까지도 서울 철교를 엄호하는 작전에 가담했다. 전현수, “소련 공군의 한국전 참전”, 국방군사편찬연 구소, 한국전쟁의 새로운 연구 제1권 (서울: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1), 638~639, 640~642쪽. 72) 中華人民解放軍軍事科學院 編,「周恩來軍事文選 第4卷 (北京: 人民出版社, 1997), 56~57쪽. 주은래의 이 전략 조언은 9월 21일에 김일성에게 전달되었다. 73) 중국 군사과학원 군사역사연구부, 군사편찬연구소 역, 중국군의 한국전쟁사 (서울: 군사 편찬연구소, 2002), 제1권, 182쪽; 일본 육전사연구보급회 편, 한국전쟁 제5권 유엔군의 반격과 중공군의 개입 , 104~105쪽. 북한 공간사는 날짜를 밝히지 않은 채 이러한 취지의 김일성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쓰고 있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시어 락동강전선의 련합부대들로 하여금 방어 전선과 지대를 축소하더라도 주력부대를 보존하 여 적들이 우리의 전선부대들을 각개격파하지 못하도록 부대 및 련합부대의 협동을 강화 하면서 몇 개 사단씩 집단적으로 방어를 구성하게 하시였다. 그리고 적들의 공격을 저지 시킬 수 있는 유리한 지형과 자연조건을 리용할 수 있는 방어지대에 전선을 이동하여 기 동하기 좋은 위치에서 방어하다가 적의 약점을 찾아 적을 분할섬멸할데 대하여 가르치시 였다.” 허종호 외, 조국해방전쟁사 2 , 48쪽. 그러나 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취한 중요한 명령을 대부분 기록했던 소련군 총참모부 작전일지에는 9월 23일의 이 명령 하달에 대해 서는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그 명령 하달 여부가 문제시된다. 다른 소련 저작들에도 이날 명령 하달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어쩌면 이 명령은 작성되긴 하였으나 전달되지 않은 것 일 수 있다. 왜냐하면 9월 25일에 제1군집단(군단)은 서울, 충주, 음성 등이 아닌 ‘대전’으 로의 철수를 명령받고 있기 때문이다. Zhurnal, 1950년 9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