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page

인천상륙작전과 북한군의 대응 88 군사연구 제130집 점령하면 북한군의 퇴로가 단절될 위험이 있으므로 신속히 낙동강전선의 주력부 대를 후퇴시켜 적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하라고 지시했다. 예지량은 이 전 문을 21일 김일성에게 전달했다. 54) 소련 외무성도 중국측의 그러한 견해가 옳다 는 점을 인정한다는 전문을 북경에 보냈다. 55) 김일성이 9월 18일 전선사령관 김책에게 낙동강 전선의 일부 부대들을 북상시 키라고 한 것은 틀림없이 그날 스탈린으로부터 ‘4개 사단’을 낙동강 전선으로부터 끌어올리라는 지시를 받고 나서일 것이다. 9월 18일자 소련군 총참모부 전쟁일지 는 서울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북한군 지도부가 “남쪽[낙동강전선]으로부터 제 1, 제9보병사단과 제17기계화사단을 불러들인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김일성은 이와는 달리 매우 모호한 명령을 내렸고, 작전일지에 쓰 인 3개 사단을 북상시킨다는 결정은 그대로 집행되지 않았다. 김일성이 전선사령 관 김책에게 내린 명령은 “현 전선을 확보함과 동시에 가급적 많은 병력을 수원 으로 전용하라”는 것이었다. 전선사령관 김책 대장은 그 날 전차를 대부분 상실 한 제105땅크사단의 주력(보유전차 약 20대)과 제9사단 제87연대를 경인지역으로 돌릴 것을 명령했다. 56) 이 두 개의 부대는 김천 지역에 전선사령부의 예비로 있 었으니 김책이 쉽게 서울로 올려 보낼 수 있는 병력이었다. 미군의 반격을 받고 있는 가운데 몇 개 보병사단을 북상시킨다는 것은 그로서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 리하여 그는 병력이 얼마되지 않고 김천에 위치하고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2 개 부대에게만 서울로 북상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북한의 공간 전쟁사는 전 선사령부가 “김천지역에 예비로 있던 땅크련합부대[제105땅크사단-필자]와 락동 강 좌안진지에서 방어하던 1개의 땅크련합부대[제17땅크여단-필자]를 신속히 대 전지역으로 기동시켜 전선예비대로 장악하였으며 전선서부로부터 1개의 련합부대 [제9사단-필자]를 새로 김천지역에 기동시켜 전선서부의 락동강계선에서 방어하 는 군집단의 예비대로 장악하게 하였다.”고 전선사령부의 조치를 기술하고 있 54) 위의 책, 185~186쪽. 55) 沈志華 編, 朝鮮戰爭: 俄國檔案館的解密文件 (臺北: 中央硏究院近代史硏究所, 2003), 542~543쪽. 56) 일본 육전사연구보급회 편, 육군본부 군사연구실 역, 한국전쟁 5: 유엔군의 반격과 중공 군의 개입 (서울: 명성출판사, 1986), 102쪽. 주영복은 회고록에 김일성의 명령이 “제1군 단 산하 주력부대 일부를 긴급히 서울·인천 지구에 파견하고 잔여 주력부대는 현 지점을 사수케 하라!”는 내용이었다고 쓰고 있다. 주영복, 내가 겪은 조선전쟁 제2권, 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