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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9 고 있다. 다른 전쟁과는 달리 전쟁의 명분을 찾기 힘든 6․25전쟁 관련 연구들은 이처 럼 그 기원을 찾고 이를 통해 전쟁 발발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매우 중 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대체로 새로운 자료의 발굴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6․25전쟁 발발에 대한 연구가 ‘보편성’을 획득할 수 없었 고, 이를 통해 다른 전쟁의 경우와 비교한다든가, 현재적인 의미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단지 ‘실증적’ 연구에만 의존할 따름이었다. 본고에서는 구 소련에서 공개된 자료들 중 핵심적인 자료들을 중심으로 하여 전쟁 발발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하 고자 한다. 따라서 본고에서 이용할 자료들이 기존의 연구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자료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각이 6․25전쟁만의 ‘특수’한 사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전쟁에서도 이용될 수 있으며, 현재적인 의미를 갖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Ⅱ. 6․25전쟁 발발 전 김일성, 박헌영과 스탈린의 만남 1950년 3월 말에서 4월 중순 사이 김일성과 박헌영은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스 탈린과 만났다. 이 방문에서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스탈린 사이에서의 대화록 은 1994년 옐친 대통령에 의해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되었다. 우선 이 대화록 을 보자. <1950년 3월 30일~4월 25일 김일성의 소련방문건(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국 작성)> 5) 스탈린 동지는 김일성에게 국제 환경과 국내 상황이 모두 조선통일에 더욱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강조하였다. 국제적 여건으로는 중 국공산당이 국민당에 대해 승리를 거둔 덕분에 조선에서의 행동개시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중국은 이제 국내문제로 인한 시름을 덜었기 때문에 관심과 에너지를 조선지원에 쏟을 수 있게 됐다. 중국은 이제 필요하다면 자기 군대를 5) 한국전쟁관련 러시아 외교문서(외무부 번역);《朝日新聞》 1993년 6월 26일자(박명림, 앞의 책, 96~98쪽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