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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71 하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미 제10군단이 서울을 점령할 때까 지 무려 13일이나 걸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바로 이 사실과 인천 주변에 주둔 했던 북한군 일부 부대들의 명령과 작전보고서를 확인한 후 북한군이 나름대로 인천상륙 이전에 상륙대책을 강화했다는 사실을 들어 북한은 인천상륙에 대해 사 전에 알고 있었으며 “인천상륙은 기습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3) 만 약 맥아더가 기습에 성공했다면 미 제10군단이 서울을 점령하는데 13일이나 걸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것이 그의 판단 근거다. 그의 문제 제기 자체는 참신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의 결론은 너무나 지엽적인 증거를 가지고 일반화를 시도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박명림의 주장은 우선 당시 평양에서 인민군 최고사령부의 군사작전을 조언했던 소련 군사고문단장 바실리예프 장군 자신의 회고를 효과적으로 반박하지 못한다. …우리는 미국인들의 전술을 잘 알고 있었다. 부산을 방어하고 있던 미군이 다른 공격을 준비하고 있으리란 사실을 짐작은 했지만 정확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공격 부대 규모를 알 수는 없었다. …신속한 인천상륙작전은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대규모의 해군부대가 상 륙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남쪽 주둔[낙동강 전선-필자] 병력에 대한 통제력에 문 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서울과의 통신은 아직 유지되고 있던 상태였지만 그 곳에서 의 소식은 점점 처참한 것이었다…. 4) 또한 소련군 총참모부가 한국전쟁 기간 동안 한국에서의 전황, 획득된 정보 등 을 그날 정리한 전쟁일지에도 1950년 9월 13일 이전까지 인천 상륙의 징후를 언 급하는 어떤 기술도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9월 13일 10여 척의 미 함정이 인천 에 포격을 가하기 위해 인천항에 접근했을 때부터 북한군은 상륙작전 가능성에 3) 박명림, “한국전쟁: 전세의 역전과 북한의 대응(1) - 1950년 8월 28일부터 10월 1일까지”, 전략연구 제4권 제2호(1997), 254쪽; 박명림, 한국 1950: 전쟁과 평화 (서울: 나남출판, 2002), 395~442쪽 참조. 이 책에서 박명림은 변함없이 인천상륙이 기습이 아니었다고 주 장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396쪽. 최근에 이상호는 박명림의 사료읽기가 잘못되었음을 정 확하게 지적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상호, “인천상륙작전과 북한의 대응”, 군사 제59호 (2006년), 141~175쪽. 4) 가브릴 코로트코프, 어건주 옮김, 스탈린과 김일성 (서울: 동아일보사, 1993), 제2권, 65~ 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