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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57 <그림 33> 한묵의 꽃과 두개골, 캔버스에 유채, 1953, 23×18㎝ <그림 34> 구봉은의 깨어진 서울, 종이에 펜과 먹, 1950-51, 10.5×14㎝ <그림 35> 도상봉의 폐허, 캔버스에 유채, 1953, 71×88㎝ 울시민 대다수는 한강대교의 폭파에 의해 서울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29) 이때 미처 피난가지 못한 미술인들이 대다수였으며 이들은 잔류파로서 일찍 한강을 넘어 대피 하였던 도강파들에게 부역자심사를 받았다. 인민군 치하에서 많은 수의 미술인이 김일 성과 스탈린 초상을 그리거나 구호가 적힌 만장을 만드는 등 동맹에 나가 부역을 하 였던 때문이다. 30) 당시 서울에 남아 있던 화가들에 의해 기록된 폐허가 된 서울의 모습은 전쟁으로 일상이 무너진 대한민국 국민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구본웅은 『문예』지에「깨어진 서울」이란 조연현 의 글에 삽화를 게재하였다. 31) 명동, 충무 로, 종로 등 시내 중심가가 폐허로 변한 서울은 높은 벽체만 남아 더욱 쓸쓸한 풍경을 자아낸다.(그림 34) 휘어진 전신주, 나뒹구는 장독 등을 통해 작가는 전 쟁으로 인해 암담한 삶을 가시화하였다. 도상봉의 <폐허>(그림 35)는 오른쪽에 첨탑과 건물로 보아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29) 정국로, 앞책, p.161. 30) 조은정,『권력과 미술』, 아카넷, 2009, p.130. 31) 畵 구본웅․文 조연현, 『문예』, 1952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