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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55 <그림 30> 박봉수의 취야, 종이에 수묵담채, 1953, 유족 소장 <그림 31> 김환기 등 4 자유의 여신상, 캔버스에 유채, 1952, 500호 붉은 태양의 색으로 물들고 있어 힘겹 게 마차를 끌고 가는 마부의 삶을 가 늠케 한다. 힘겨운 피난지 삶의 모습 을 바닷가 공장의 굴뚝에 비견한 많은 작가들처럼 그는 피난지의 삶을 암울 하게 표현하였다. 이러한 부산에서의 암담한 삶은 박 봉수의 <취야>(그림 30)에서도 드러 난다. 수묵담채의 이 작품은 1952년도 술집에서의 거친 스케치를 기본으로 하여 이듬해 제작한 것이다. 27) 좁은 술집 하나 가득 들어찬 사람들은 모두 술에 취해 엎드려 있거나 손으로 얼굴을 괴고 있는 등 실의에 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빼곡한 인물들은 부산에 들어찬 피난민들의 축약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의 속에서 막걸리로 배를 채우던 당시 피난 민의 모습을 통해 기약 없는 전쟁에서 방황하는 민중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Ⅳ. 전쟁과 삶 1952년 6월 24일 부산의 정부임시청사 외벽에는 김환기, 김인승, 남관, 박영선이 공동으로 제작한 <자유의 여신상>(그림 31)이 걸렸다. 당시 부산에 피난 와 있던 유명화가들의 생계에 도움을 주기 위한 선전국의 배려로 6․25 발발 2주년을 맞아 반공의식을 고취 하려는 목적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이 그 림은 드라클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 의 여신>과 구도와 인물의 배치에서 아주 유사하다. 모방과 재현의 그림이라는 점에 27) 영우구락부,『지홍 박봉수』, 1986, pp.238~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