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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자료를 통해 본 6․25전쟁 54 군사연구 제130집 <그림 28> 김원의 영도다리, 캔버스에 유채, 1952, 45.5×33.3㎝ <그림 29> 김종식의 제빙공장, 캔버스 유채, 1953, 32.9×44.6㎝ 요도 없이 광복동 거리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대여섯 명은 모이게 되는 상황’ 이었던 것이다. 26) 고향을 떠난 작가들은 굳이 월남민이 아니더라도 실향의 상태 였다. 그의 <부산 영도 공장지대>(그림 27)는 부산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화 가들의 현실이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본직에 충실할 수 없는 피난민으로서 생계 유지를 위하여 무엇이든 해야만 했던 전쟁기 후방의 일상인 것이다. 김원의 <영도다리>(그림 28)도 임시수도 부산에서의 고달픈 삶을 반영한다. 영 도다리 옆 도자기회사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하던 미술인들은 살 곳이 마땅치 않아 부산 외곽에 거주하며 시내에서 일자리를 찾아 영도다리를 오갔다. 푸른 색조의 이 그림은 전쟁기 피난생활의 어려움을 밤풍경을 택하여 나타냈다. 산언덕을 따라 올라가는 판잣집의 대열을 어스름한 불빛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다. 영도다리를 따라 시내에 이르는 자갈치시장은 6․25전쟁의 애환이 스며있는 곳으로 김종식의 <제빙공장>(그림 29)은 고단한 피난에서의 노동을 보여준다. 하 지만 아기를 업은 아낙네의 모습이 규칙적인 선의 율동으로 인해 활기를 띠고 있 어, 고통보다는 희망이 담겨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장욱진의 <자갈치시장>(1951년, 종이에 유채, 12.8×18.2cm)에서도 제빙공장과 고 기를 운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어 이 시기 피난민의 삶에서 공장과 자 갈치시장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한묵의 <공장지대> (1952년, 캔버스에 유채, 18×22cm)도 어두운 색으로 표현된 공장과 달리 하늘은 26) 이상범, 「나의 교우 반세기」,『신동아』, 197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