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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자료를 통해 본 6․25전쟁 52 군사연구 제130집 <그림 22> 김기창의 피난민, 비단에 채색, 1953, 73×100㎝ <그림 23> 김환기의 피난열차, 캔버스에 유채, 1951, 37×52㎝ 김기창은 피난민 대열에서 서울에서 처가인 군산으로 내려갔다. 대개의 피난민 그림이 북에서부터의 월남을 그린 것임에 비해 남에서 남으로 피난해야 되는 상 황은 인민군 체재를 경험한 후라 자발적이었으며 더욱 절실한 것이었다. 눈발이 내리치는 엄동설한에도 자유진영으로의 선택에 의해 이동하는 민중의 모습은 이 데올로기 전쟁의 참상을 전한다.(그림 22) 김환기의 <피난열차>(그림 23)는 바로 이러한 인구의 이동을 최소한의 형태로 간략하게 표현한 화면을 보여준다. 부산 으로 피난온 김환기는 1951년 1월 부산 남포동 뉴서울다방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 전시에는 전쟁을 담은 그림들도 보였는데 여기에서 소개된 <피난열차>는 상 자곽에 담긴 콩나물처럼 사람이 가득한 열차를 표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표현 되었음에도 화면 전체가 조용하게 느껴지며 깊은 슬픔이 배어 나오는 것은 청색 하늘과 적색 땅 사이에 무기력한 인간들이 콩나물처럼 상자모양 열차 안에 쪼란 히 가득 담겨 있는 탓이다. 생존을 찾아 부산으로 갔지만 피난지에서의 주거는 삶의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비참한 것이었다. 이응노의 <부산피난시절>(그림 24)은 건물이랄 것도 없이 거적 으로 문을 해 달거나 누더기처럼 이은 지붕 그리고 천막을 치는 등 피난민의 거 주를 보여준다. 아무 곳이나 빈 곳에 자리잡고 밖에 화덕을 놓아 밥을 끓이고 집 과 집 사이에 줄을 걸어 빨래를 너는 이들의 모습은 피난살이의 어려움을 절실히 보여준다. 이러한 삶은 군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산으로 피난간 김환기는 바닷가에 이마를 맞대고 늘어선 천막을 인상적으로 파악하였다.(그림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