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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자료를 통해 본 6․25전쟁 50 군사연구 제130집 여성처럼 사회에서 약자이지만 전쟁에서 활약한 또 다른 존재인 미성년자 혹 은 젊은이의 모습을 담은 손일봉의 <동부전선의 소년병>(그림 17)은 전쟁이 발 발하자 결성된 학도의용군의 모습을 증명한다. 전쟁 전에 결성되어 있던 관제의 학도호국단은 대통령이 통솔자였으나 자발성 이 없었기에 전쟁이 발발하자 조직의 무력함을 드러냈다. 이에 학생들은 학도의 용대를 결성하였고 각 정훈감의 통솔 아래 지역별로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그들 은 대한학도의용대 전투요원으로 전쟁에 참여하였으며 그중에는 여자대원도 있었 다. 학도의용대에서 활동한 학생은 25만 명, 전투에 참여한 학생들은 2만7천 명이 었고 확인된 전몰학도만도 1,394명이었다. 25) 이러한 학도병과 더불어 어린 학생 들까지 참여하였던 당시 상황을 이 그림은 증명하는 것이다. Ⅲ. 전쟁과 피난 1.4후퇴는 민족의 대이동이었다. 김원의 <피난민, 1․4후퇴>(그림 18)는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눈밭을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도 나아가는 피난민 행렬을 그렸다. 자신의 가족을 그려 넣어 경험을 현재화한 작품으로서 추위와 기 아 속에서도 생존을 위하여 남으로 향하는 절실함을 묘사하였다. 김원의 <38선>(그림 19)은 이러한 전쟁의 상황을 더욱 극적으로 나타낸 작품 으로 상징성이 두드러진다. 봇짐을 지고 아기를 안거나 업고, 걸리며 화면 우측의 밝은 곳을 향하는 피난민 대열은 자유를 찾아 얼음의 강을 건너지만 즐비한 시체 를 딛고서야 이곳에 이를 수 있다. 자유를 향해 오른쪽 팔을 힘껏 뻗은 붉은 치 마의 여인이나 피카소의 게르니카에서 볼 수 있는 자세의 아기를 안은 엄마의 절 규 등은 이 작품이 피난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남과 북이 갈린 38선을 상 징적으로 나타낸 것임을 알 수 있다. 인민군이 쳐들어온 서울을 빠져나가기 위하여 한강으로 향하던 피난민들은 강 을 건널 수 없었다. 이미 한강이 폭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루에는 배를 타 고 강을 건너려는 피난민들이 아우성을 이루었다. 도강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한강대교가 끊어진 상태에서 남으로 향하려는 피난민들은 나룻배에 의지할 수밖 25) 정국로, 『한국학생민주운동사』, 도서출판 반, 1995, p.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