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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군사연구 제130집 45 <반공여혼>(그림 10)은 입체파적인 기법으로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공간을 가 로지르는 포탄과 탱크 그리고 반으로 나뉜 화면은 전장터에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속도를 느끼게 하여준다. 손가락과 눈의 표현 등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연상 시켜 불의의 공습에 대항하는 자유의 모습을 투사하는 작가의 의도가 파악된다.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전쟁의 모습을 전하는 많은 작품들 속에서 추상화된 작품 은 관념적으로 해석된 전쟁의 모습이지만, 전장의 상황을 더욱 흥미있게 접근하 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외형의 기록으로서 전쟁에서부터 내면화 된 상처로서의 전쟁의 실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2. 전쟁과 군인 9․28수복이 된 서울에서 대한미술협회 위원장인 고희동과 부위원장인 장발은 종군화가단을 조직하였다. 특히, 당시 김정열 공군참모총장과 서울대학교 미술학 부장 장발은 친한 사이여서 장발, 송병돈, 김병기, 김정환, 이순석, 장우성 등 교 수들 대부분이 공군종군화가가 되었다. 18) 화가들 사이에서는 ‘공군종군화가단’으 로 기억되지만 사실 이 조직은 ‘공군미술대’이다. 공군본부는 작전부 소속으로 1950년 11월에 음악대, 문학대 등을 서울에서 창설하였는데 미술대도 이때 함께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미술대의 단장이었던 장발교수가 1․4후퇴 때 미국으 로 가버리자 서울대를 졸업한 백문기가 단장이 되었다. 공군미술대는 1951년 대 구로 피란을 가서 공군본부 정훈감실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이후 공군미술대는 1953년 5월에는 국방부 정훈국 종군화가단의 대구 분단으로 통합, 흡수되었다. 19) 대구에서 공군종군화가단에 소속한 단장 백문기, 부단장 정창섭, 대원 장운상, 권 영우, 전상범, 이순복, 김병욱, 이영은, 남용우, 구옥회 등 대부분이 서울대 미대 재학생이었다. 20) 서울대학을 1951년에 졸업하고 공군종군화가단 소속 종군화가였던 권영우가 그린 <검문소-00전선으로 가는 길>(그림 11)은 춘천을 거쳐 2사단으로 가던 중 한밤중의 검문소를 그린 것이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렸지만 전쟁중에 제작한 그 림치고는 제법 규모가 있는 본격적인 작품으로 젊은 화학도의 시각에서 기록된 18) 장우성,『화단풍상70년』, 미술문화, 2003, p.171. 19) 중앙일보사 편, 『민족의 증언』, 1983, p.127. 20) 백문기,「나의 공군미술대시절」, 『월간미술』1993. 6. p.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