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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에서 휴전까지 356 군사연구 제130집 <사진 1> 1950.9.28 서울탈환-유엔 깃발 중앙청에 게양 ⓒ NARA 닥치는 대로 방화와 파괴로 서울 시가지는 폐허가 되었다. 해가 기울고 어두워진다. 드르릉 쾅쾅, 서울 하늘에 폭음과 섬광이 번쩍인다. 모두가 호 밖으로 나왔다. 밤공기를 흠뻑 마신다. 이 모부와 형이 판단하면서 “내일이 고비로군!” 이때에 영순 형이 산중의 호로 허 둥지둥 올라왔다. 희소식이 다. “미군과 한국군이 오늘 낮에 서울에 들어갔단다.” 우리는 일제히 소리쳤다. “야아아! 이제 우리 살았 다! 살았다! 만세다!” 9․28 서울수복은 바로 그날이었 다. 3. 돌아온 생자(生者), 중동부 전선으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수복과 함께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전화가 휩쓸고 간 서울 시가지는 폐허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황량하였다. 남쪽으로 피난간 사람들도 속속 돌아오기 시작했다.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징병소집통지서가 나에게 전달됐다. 당시 만20세로 입영하는 그날은 싸늘한 겨울 날씨였다. 200여 명이 돈화문 광 장에 소집되었고, 인원확인 후 우리는 서울역으로 이동하였다(1950. 11. 23. 오전 10시). 열차에 몸을 싣고 대구로 내려갔다. 도착한 곳은 수송국민학교에 자리잡은 신병보충훈련소였다. 옆자리 동료인 장경호가 중얼댄다. 장차 전투에 나갈 생각을 하니 아주 두렵단다. 대부분 훈련병은 이러한 두려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젊은이답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첫날 아침 6시에 기상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훈련병 일동은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