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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기 군사연구 제130집 355 이 요소요소를 장악한 상황에서 나루터나 다리를 이용할 수 없었다. 한강 건널 때 필요한 자동차 타이어 튜브 2개를 누이한테 부탁하여 구해 왔다. 인민군의 눈 을 피하기 위해 야밤에 형과 함께 골목길로만 이동하였다. 간혹 큰 길에 이르면 주위를 살피며 뛰어 건너야만 했다. 천신만고 끝에 한남동 철길 둑에 이르렀다. 둑에 뚫려있는 굴을 나서면 바로 나루터(현 한남대교 북단)나 굴속이 의심스러워 둑 위로 넘었다. 상류로 2㎞쯤 올라가 편편하고 도강하기 적당한 곳에 도착하였 다. 수심도 그렇게 깊지 않아 보였다. 형과 나는 가져온 튜브에 공기를 불어 넣는 한편 끈으로 한 가닥씩 서로의 팔 과 튜브에 묶어서 연결한 다음 강물로 들어갔다. 팔에 묶은 끈을 서로 당기며 떠 내려갔다. 긴장된 가운데 결국 잠실 모래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가집으로 향하였다. 2. 산중으로 숨다, 호 파고 그 속에서 연명 한강을 도강하여 잠실 모래밭에 도착한 후 마침내 외가에 당도했다. 이 모부가 먼저 와 있었다. 젊은이 3명이 뒷산에서 호(壕)를 파고, 바닥에 가 마니를 깔고, 통나무 서까래 지붕, 그 위에 솔나무 가지를 쌓아 얹어서 위 장했다. 여름 삼복더위, 숨 막히는 호 속에서 은신생활이 시작되었다. 소련은 유엔군에 참가한 나라에 배치한 정보조직을 가동, 수집된 정보를 김일 성에게 알린다. 미군의 인천상륙계획이다. 이에 김일성이 독전하려고 서울로 내려 왔다.「전선지구 경비사령부」와 107연대를 신설하고, 사령관에 박훈일( 朴勳一, 內務省副相 )을 임명, 독전한다(전투명령 제72호, 1950.8.25). 그는 다시 인천지구 방어사령부를 편성하고 명령한다.(전투명령 제1호, 1950. 8. 28 서울에서) 인천 방어지구를 공격하는 적을 격퇴하라. 그러나 전세는 점점 급박해진다. 261척의 거대한 함대가 인천 앞 바다에 포진 하고 이틀 동안 포격과 폭격을 가한 뒤 9월 15일 새벽 상륙작전 개시, 미 해병대 가 28분 만에 교두보를 구축하고 오후엔 월미도 전체를 장악하였다. 17일에는 인천을 탈환하고 경인가도로 진격했고, 19일에는 미 10군단이 김포 비행장에 착륙하였다. 인민군은 그대로 무너져 총 퇴각을 감행하였고 도망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