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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기 군사연구 제130집 351 로를 달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기구한 일에 직면하여 서로의 소재지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덧 만 3년이 경과했으나 그래도 지금까지 단념하지 않고 그녀와의 극적인 만남을 몽매 에도 잊지 않고 기다려 온 터였다. 솔직한 고백으로서 내가 구월산에 머무르면서 참모장 직함에 뜨겁게 매달리는 이유 중의 절반 가량은 J양과 해후할는지도 모른 다는 희망에 달려 있음이 거짓 아닌 진실이었다. 그렇지만 시일이 가고 휴전회담의 성숙도에 따라서 J양과의 극적인 만남이 헛 것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단념을 익혀가면서 나는 그녀를 기다리는 사사로운 정념 을 조용히 흙에다 묻기로 했다. 사사로운 정념 때문에 유격부대 전체 대원들의 십자향방을 그르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J양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시작한 며칠 후에 백령도 기지사령 부로부터 의미심장한 무전이 들어왔다. 전문을 요약하면 휴전회담의 조인이 임박 했으니 38도선 이북지역에 있는 도서에서 유격대원들이 모두 철수해야 된다는 냉 정한 통지였다. 그로부터 다시 며칠 후 미 해군 LST 수송선이 우리 유격대를 이동시키기 위 해 초도 연안에 나타났다. 그리하여 여러 유격부대 소속원들과 함께 탑승시킨 다 음 장산곶을 향해서 항진할 때 나는 갑판에 올라가서 멀어져 가는 북한 땅을 바 라다보았다. 날씨가 맑은 탓으로 구월산 영마루의 이어진 능선이 확연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지난 3년 동안 나와 우리 동지들이 자유의 불길을 지피면서 통일염원의 청춘을 연 소시킨 감격시대의 무대가 바로 저기였다. 저 영마루, 저 골짜기, 저 산기슭에서 이 름 없이 산화한 자유의병들의 영령을 앞으로는 누가 달래줄 것인가. 나는 만감이 교차하여 울먹거리며 혼자 외쳤다. “잘 있거라, 구월산아! 다시 보 자, 자유의 성지 구월산아!!” LST의 항진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구월산 능선은 물 보라 치는 해무 속에 점점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남진하는 수송함이 장산곶을 에돌아서 북위 38도선을 넘을 때 누구의 아이디어인 지는 몰라도 기적 같은 부저가 울렸다. 나는 문득 우리 부대가(部隊歌)에 생각이 미 쳐 대원들에게 일제히 합창하도록 했다. 「안악유격대 노래」는 내가 노랫말을 지었 고 남한에서 애송되는 어느 행진곡의 곡조를 차용한 것이었다. 그 가사는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