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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가지 군적을 겪으며 6․25전쟁에 참전했다 348 군사연구 제130집 4. 공간사의 안과 밖 실제로 우리 구월산유격대를 포함하여 30여 개 유격부대들이 전쟁기간 중에 거둔 종합전과를 공간기록에서 찾아보는 노력은 많은 인원과 시간이 필요하며 또 실행주체의 입장 등에 따라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비교적 객관성을 인정받고 있는 군부와 대학 연구실 및 전쟁사 연구소 등의 자료들을 참고로 삼기로 했으며 그 대상은 다음과 같다. ▪미 극동군사령부 G-2 특수작전처 ▪미 극동군사 연합정찰사령부 제8177부대 ▪주한 유엔군 유격부대 제8240부대 ▪주한 미8군사령부 정보 및 작전 참모부 ▪존스 홉킨스대학 작전연구실 ▪한국전쟁과 유격전(육군본부) ▪한국전에 있어서의 유엔군 유격전(육군본부) ▪한국전쟁의 유격전사(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그밖에 여러 참고문헌과 논술 논고들이 있어 유격부대들의 활동상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같은 자료들에 의하면 총 4,445회의 작전․공작 활동을 통하여 적군 살상 6만2천여 명이었고, 적의 무기․장비 노획 및 파괴가 7천7백여 점, 철도․교량․수문 폭파가 50여 개소, 선박의 노획 및 격침이 195척, 식량노획 이 3천8백 톤, 유엔공군비행사 구출이 10여 명, 공산군 생포가 950명, 북한동포의 탈출․피난․인도 30여만 명 등의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종합전과를 올리는 동안 우리 측의 희생을 보면 구월산유격 안악부대 의 경우 126명이 자유제단에서 목숨을 잃었고 30여 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당 시 안악부대의 병력이 많을 때는 약 6백여 명에 달했으므로 산술적 계산으로 병 력의 25% 정도가 전사한 셈이다. 한편 유격부대 전체 계산으로는 약 5천여 명 이 전사하였고 그중에 약 4천 명의 위패가 현재 대전국립현충원에 봉안되어 있 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는 ‘유격부대전적위령비’가 마련되어 있다. 유격작전 공간사에 활자화하기가 좀 주저되는 사례 가운데 그래도 ‘남기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