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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기 군사연구 제130집 345 건재 중이며 김승두는 인천에, 이봉준은 경기도 양평에서 거주하며 파라슈트 낙 하 제1진이었던 옛이야기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공산군은 해안선의 경비 강화로 우리 유격대의 침투를 상당히 제어했으나 우 리가 파라슈트로 자주 투하함에 따라 손을 쓰지 못하고 애를 태우는 모양이 역력 히 드러났다. 어쩌다가 보급품을 포장한 파라슈트가 지상에 떨어지지 않고 높은 나뭇가지에 걸려 매달리는 경우에는 마을의 남녀노소가 모두 달려드는 까닭에 낙 하산 수거에 애를 먹기가 일쑤였다. 공지합동작전의 한 일화로서 야간에 북한 상공에 항공기가 들어가서 파라슈트 를 투하하는 경우 항공기에 탑승한 우리 통역장교가 산간지역에서 파라슈트를 수 거하는 우리 유격대원들에 대하여 “이 밤중에 고생하는 유격대원 여러분들이야말 로 참다운 영웅들이요”라고 칭찬하여 유격대원들을 감격시키는 일이 자주 있었 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야간 비행기의 보급요원이 유격대원을 향해서 위로와 격려의 말을 아까지 않은 것은 참으로 대견스러운 대 화들이었던 것이다. 한편 서울에 위치한 제8240부대 사령부에 나와 있던 한국연락장교단장인 이영 순 육군대령이 서해 유격작전 지역을 시찰하는 과정에서 구월산 유격대의 활약상 에 감동하여 참모장인 나를 특별 면담한 다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적이 있었 다. 그런데 그로부터 얼마 후에 서해지구 유격부대 유공자들에 대한 무공훈장 수 여식에서 그의 수수께끼 같았던 미소의 의미가 풀리게 되었다. 이 무공훈장 수여 식은 1952년 11월 29일에 서울의 제8240부대 사령부 광장에서 진행되었는데 신태 영 국방부장관이 장호강 상훈과장을 대동하고 식장에 나와서 훈장을 직접 달아 주었다. 그런데 20여 명의 수훈자 가운데 나 혼자만이 그날의 최고 훈격인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받게 되어 당사자인 나 자신을 놀라게 했다. 다른 수훈자들 은 동성충무 혹은 한 훈격이 낮은 화랑훈장을 받았다. 특히 내가 기뻤던 것은 주요 유격부대 지휘관들에게 서훈하면서 우리 안악유 격대의 홍석우 부대장에게도 동성충무훈장을 줌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부대에서 는 참모장과 부대장이 복수로 훈장을 받게 된 것이었다. 한 부대에서 2명의 수훈 자가 나온 것은 우리 안악유격대뿐이었으며 특히 내가 받은 금성충무무공훈장은 수훈자 전체 가운데 내가 유일한 최고 수훈자였던 것이다. 훈장 수여식이 끝난 다음 국일관에서 축하오찬회가 열렸을 때 이영순 대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