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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기 군사연구 제130집 335 그것은 북한 정권의 내무상인 박일우(朴一禹)의 다음과 같은 발표문이었다. …금일 새벽 4시부터 남조선 국방군은 38도선 전역에 걸쳐서 2킬로 내지 5킬로미 터 북침해 왔다. 38도선 전지역의 우리 내무성경비대는 적의 불법적인 침입을 맞아 이를 격퇴하기에 노력하고 있음. 우리 공화국 정부는 남조선 국방군이 즉시 38도선 이남으로 철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며, 만일 이를 불응하여 발생되는 중대한 사태 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남조선 괴뢰도당에 있는 것임을 경고하는 바임. 1950년 6월 2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무상 박일우 비에 젖은 벽보의 문면은 의심의 여지없이 북위 38도선 전 지역에서 무력충돌 이 일어났으며 그 충돌은 ‘전쟁’ 이라는 극단적 국면으로 치닫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침녘에 사록사록 내리던 비는 어느덧 빗줄기로 증폭되었으며 온 하늘이 뚫 린 여지없이 검은 비구름으로 바뀌어 갔다. 그날은 일요일이었으나 휴일 같은 기 분은 단번에 잡쳐 버렸다. 2. 제2군관학교 입교 기습남침을 감행한 북한공산군이 38선을 단숨에 돌파하고 사흘 만에 서울을 점령했다는 평양방송 뉴스 특보를 들었을 때, 나는 온 몸에서 힘이 쑥 빠져나가 는 무력감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로부터 4년 이전이던 1946년 1월에 나는 구제중학교 4학 년생으로서 ‘반공․반탁 학생시위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공산 내무서에 체포 된 다음 소련군 특무사령부에 이첩되어 해주감옥과 평양감옥에서 1년여 동안 옥 고를 치룬 ‘반동학생’이었으므로 이번의 공산군의 승전 소식은 나에게는 ‘악마의 주문(呪文)’처럼 역겹게 들렸던 것이다.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되었다는 6월 28일 저녁, 동평양 문수리의 사범대학 강당에는 1천명 가까운 남녀학생들이 모여서 소위 ‘인민군 입대지원 궐기대회’ 가 열렸다. 참석 학생들에게 ‘입대지원서’가 일제히 배부되었으며 나도 역시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