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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3가지 군적을 겪으며 6․25전쟁에 참전했다 334 군사연구 제130집 Ⅰ. 저것이 자유의 강이다 1. 프롤로그 - 비에 젖는 벽보 아침 일찍 하숙집 들창문을 여니 밖에는 이슬비가 새록새록 내리고 있었다. 1950년 6월 25일 아침. 평양사범대학 조선어문학과 2년생인 나는 바로 어제 오후에 마지막 학년말 시 험과목인 국문법 테스트를 마쳤으므로 이제부터 학년말 방학을 즐기고 나면 사범 대학 최고학년인 3학년을 이수할 차례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스케줄에는 “잠시 기다려라!” 라는 단서가 걸려 있어 마음의 평정이 헷갈려지는 것이었다. 까닭인즉, 6월 말일부터 방학에 들어가서 7월과 8월 두 달 동안을 여름방학으로 쉬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을 반 토막으로 잘라내어 전반기 7월 중에는 재학생들 모두가 진남포 근처의 군사교련시설에 입소하여 대 대급 야외전투훈련을 실행한 다음, 7월 중의 군사교육훈련이 양호한 경우 8월 한 달을 여름방학으로 허용하다는 단서가 붙은 여름방학 시행계획인 것이었다. 이러한 제한조치로 말미암아 어제(6월 24일에) 비록 학년말 시험을 모두 끝마 쳤다 해도 학생들은 집에 귀성하지 못하고 6월 말일까지 일단 대기해야만 했었 다. 그것은 참으로 짜증스러운 기다림의 대기 기간이었다. 나는 따분한 기다림이 역겨워서 하숙방의 청소로 기분전환을 시도하였다. 책상과 책꽂이의 서책들을 분 류표에 따라 옮겨 꽂았고 그동안 J양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편지들을 수신일정 순 서에 따라 차례로 정리하였다. 그러면서 시간이 정오를 넘겼을 무렵에 가벼운 시장기를 느꼈을 때에 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 형은 뭣하고 있지? 밖에서는 전쟁이 났다고 야단법석인데!” 미술학교에 다니는 C군이 하숙집 싸리문을 젖히면서 하는 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C군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니 그는 다짜고짜로 내 손을 붙잡고 이끌 면서 마을 한가운데 벽보판께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이것 봐! 이게 전쟁 났다는 말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나는 숨을 안정시키면서 빗줄기에 얼룩이 진 벽보판을 조심조심 읽어 내려갔다.